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위인인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영화 명량이 개봉한지 한달만에 누적관객수 170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순위 1위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23전 23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운 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순신 장군은 어떤 전략으로 승리를 이끌었을까요?
거북선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임진왜란 직전 조선에서는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거북선을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기존의 판옥선 위에 덮개를 씌운 형태였기 때문에 돌격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592년 4월 13일 왜군과의 첫 전투였던 옥포해전에서부터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후 사천포해전, 한산도대첩 등 여러 해전에서 큰 활약을 하며 일본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학익진 전술이란 무엇인가요?
1592년 5월 7일 벌어진 제 2차 당항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학익진(鶴翼陣)전술을 선보였습니다.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편 모양으로 적을 둘러싸 공격하는 진형으로, 포위 섬멸 작전에 주로 이용됩니다. 특히 좁은 수로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많은 배를 투입해야 하는 경우 효과적입니다. 또한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도 적들을 포위해버리기 때문에 적군 입장에서는 도망갈 곳이 없어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명량해전 승리는 우연이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명량해전에서의 승리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준비 끝에 얻은 값진 승리였습니다. 우선 울돌목의 조류 방향을 파악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적은 수의 전선으로 다수의 병력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사기를 북돋아주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12척의 배로 133척의 적의 배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전락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이순신 장군의 희생정신을 본받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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